강남의 놀라운 변신, 압구정에서 시작된 도시 개발의 비밀
강남은 오랜 시간 서울의 새로운 부도심이자 상징적인 지역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과거에는 수도권 변두리에 불과했던 이 지역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번화가로 급부상하게 되었을까.
오랫동안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으로 남아 있던 이 땅은 1960년대부터 압구정동 일대를 중심으로 도시 개발의 거대한 물결을 맞이하며 눈부시게 변신했다.
과수원과 채소밭이던 지역이 초고층 아파트와 각종 문화 시설로 채워지기까지, 압구정동을 비롯한 강남 전역은 이른바 ‘영동개발’과 함께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압구정의 옛 모습과 지명의 유래
압구정동은 조선 세조 시기 한명회가 자신의 호를 따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한강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졌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몇몇 과수원과 배나무 밭이 존재했을 뿐이라고 전해진다.
1970년대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신촌·종로·을지로 등으로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는 한적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이 곳이 강남구로 편입되고, 이후 서울의 핵심 주거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60년대 시작된 대규모 개발 구상
1960년대 서울은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했고, 자연스럽게 도심의 확장 계획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남서울계획’과 ‘새서울벽지계획’을 구상했으며, 그중에서도 한강 이남에 자리한 지역을 주목했다.
특히 1966년 영동지역을 부도심으로 개발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본격적인 강남개발이 추진됐다.
‘영동’이라는 명칭은 ‘영등포의 동쪽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를 일괄적으로 가리키던 표현이었다.
1968년에 시작된 영동지구구획정리사업은 이 일대의 도로망과 생활 인프라를 구성하는 중요한 사업이었다. 또한 ‘특정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되고 영동지구가 개발촉진지구 1호로 지정되면서, 강남구·서초구는 주택 단지 조성과 함께 빠르게 인구를 흡수해 나갔다.
특히 성공한 사업가와 관공서의 이전까지 맞물리면서 강북과 차별화된 도시환경을 구상할 수 있었다.
압구정동과 아파트 숲의 등장
압구정동은 강남 개발의 대표적인 사례다. 초기에는 공무원 아파트나 시영주택 등 대규모 주택 공급을 통해 인구를 유입시켰고,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원활한 주거 환경을 자랑하는 대단지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예컨대 1972년 정부가 특정지구 개발 촉진에 힘입어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참여했고, 1976년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섰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높은 층수와 넓은 부지를 활용한 조경 설계가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특히 압구정동은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부촌의 상징이 되어 갔다. 전국에서 몰려든 인구가 집중된 강남구는 아파트값 상승의 대표지역이 되었고, 압구정동을 비롯한 주요 단지들은 점차 고급화와 대단지화를 추진했다.
유명 중·고등학교와 학원가가 밀집하면서 교육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서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땅값과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강남 8학군’이라는 말도 이 시기부터 널리 회자되었다.
도시의 중심으로 부상한 강남의 의미
강남이 도시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교통 인프라 확충이다.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 개통되면서 남부 지역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관문이 자연스레 강남에 형성됐다.
이로 인해 인구와 자본이 유입되고, 투자 가치가 수직상승하며 강남은 무서운 속도로 확장됐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의 증설과 주요 간선 도로(강남대로, 테헤란로, 영동대로, 도산대로 등)의 체계적인 정비로 인해 강남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세련된 도시 공간으로 변모였다.
개발 초기에는 홍수가 나면 저지대가 쉽게 물에 잠긴다는 약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토지 매립과 수해 방지 대책이 시행되면서 이런 위험 요소들도 역동적인 도시개발에 힘입어 점차 사라졌다. 대형 오피스건물, 거주환경이 뛰어난 아파트 단지, 쇼핑 중심가 등 도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압축된 강남은 어느덧 서울 중심지로 떠올랐다.
변천의 상징, 압구정로데오의 과거와 현재
압구정동의 한가운데 위치한 로데오거리는 1990년대 이후 젊은 세대가 모이는 패션 거리로 각광받았다. ‘X세대’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스타일과 패션이 이 거리를 가득 메우면서 압구정동은 그 자체로 유행의 발신지가 되었다.
쇼핑과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명소가 된 압구정로데오는 2000년대 들어 임대료 상승과 상권 변화로 한때 쇠락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또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재도약하고 있다. 여러 트렌디한 업체들이 입점하고,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거리 자체가 힙한 감성을 갖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의 미래, 초고층 재건축과 새로운 도전
최근 압구정동 일대에서는 60~70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재건축 추진 계획이 활발히 논의 중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구역이 사업성을 검토하며 새로운 설계를 시도하고 있다. 단순히 높이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강 조망권을 확보하고 녹지 공간을 입체적으로 배치해 개방감과 쾌적함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이 크다.
재건축으로 추가되는 주택 수와 각종 편의시설은 앞으로 압구정뿐 아니라 강남 전체의 도시 경관을 다시 한 번 거대하게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초고층 건물이 가지는 상징성과 경제적 효과를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공사비 증가와 분담금 부담 등 현실적인 문제도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발전과 도시 디자인 철학이 조화를 이룬다면, 이 지역은 새로운 도시문화를 선도하는 ‘강남 속 강남’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문화와 자연을 어우르는 도시로의 발전
강남 일대의 도시개발은 단순히 건물만 새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문화와 환경을 조화롭게 구현해 내는 도전이기도 하다. 점차 중요한 화두가 되는 것은 ‘도시 속 자연’과 ‘개방성’이다.
이미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담장 없는 단지, 공공 공간의 개방, 보행자 안심거리 조성과 같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압구정동 일대에 새롭게 들어설 초고층 단지들도 녹지율과 친환경 설계를 중시하며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보행통로 등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도시 속에서 여유와 자연을 함께 누리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래의 강남은 초고층 빌딩과 풍부한 녹지가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고급 주거 문화를 창출해 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의 중심으로 떠오른 강남이 앞으로도 혁신을 멈추지 않고 한국의 도시 문화를 주도하는 핵심 공간으로 걸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끝없이 진화하는 강남, 그리고 압구정
강남은 그저 행정구역의 명칭에 머무르지 않고, 서울의 문화와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허브로 성장해 왔다. 압구정동이 대표 사례인 것처럼, 이 일대의 변화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상징으로서 자리매김했다.
한강 변 모래밭에서 농작물이 자라던 이곳이, 초고층 아파트 숲과 세계적인 패션·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난 배경에는 끊임없는 개발과 혁신,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열정이 있었다.
앞으로도 강남은 글로벌 도시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건축·디자인 전략을 펼쳐나갈 것이다. 특히 압구정동 재건축 사업은 이미 구체적인 계획 안을 마련하는 단계에 이른 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미래의 강남을 기대해볼 만하다.
한강과 인접한 대규모 녹지 공간, 국제적인 수준의 상업시설 및 첨단 인프라가 결합해 만들어낼 풍경은 지금까지의 강남과도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할 것이다.
이렇듯 끊임없이 변신하고 진화하는 강남은 누군가에게는 꿈을 실현하는 무대로, 또 누군가에게는 트렌드를 읽어내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압구정동이 놓여 있다. 이 공간이 보여줄 새로운 발전 양상은 비단 지역 주민만의 관심사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며, 서울 전체를 넘어 대한민국 도시문화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