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원근법을 적용하면 안 되는 이유와 올바른 드로잉 비법
그림을 처음 배우는 분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있게 배우는 이론 중 하나가 바로 '투시 원근법(Perspective)'입니다. 건물이나 풍경을 그릴 때 소실점을 찍고 투시선을 연결하면 평면의 종이가 순식간에 입체적인 3차원 공간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기법이죠. 하지만 이 강력한 원근법의 규칙을 '인물화', 특히 얼굴 드로잉에 그대로 적용하려다 그림을 망치는 경우가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분명 배운 대로 눈의 크기를 뒤쪽으로 갈수록 작게 그렸는데, 왜 내 그림은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 같을까?"라는 고민을 해보신 적이 있다면, 오늘 포스팅이 그 해답이 될 것입니다. 인물화, 특히 두상을 그릴 때 발생하는 치명적인 원근법의 오류와 자연스러운 얼굴을 그리기 위한 '평행 이론'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목차
- 1. 인물화가 어색해지는 결정적 원인: 과도한 투시
- 2. '건물'과 '사람 얼굴'의 결정적 차이점
- 3. 거대 두상 vs 일반 두상: 원근법 적용의 기준
- 4. 자연스러운 드로잉을 위한 솔루션: 평행하게 적용하기
- 5. 실전! 눈과 이목구비 배치 꿀팁

1. 인물화가 어색해지는 결정적 원인: 과도한 투시의 함정
많은 초보 미술 학도들이 "멀리 있는 것은 작아진다"는 원칙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그래서 반측면(Quarter View) 얼굴을 그릴 때, 화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눈을 앞쪽 눈보다 현저하게 작게 그리거나, 귀의 위치를 급격하게 뒤로 보내 얼굴의 깊이감을 과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어떤가요? 입체감이 살아나기는커녕, 얼굴이 뒤틀려 보이거나 마치 광각 렌즈(Fish-eye lens)를 얼굴에 바짝 들이대고 찍은 사진처럼 심각한 왜곡이 발생합니다. 이는 측면과 정면 얼굴의 특징을 억지로 혼합하려 하거나, 좁은 얼굴 면적 안에 거대한 공간에나 적용될 법한 투시 원근법을 무리하게 구겨 넣었기 때문입니다.
핵심 포인트
실제와 다른 왜곡은 '관찰 부족'이 아니라 '지식의 오용'에서 비롯됩니다. 인물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시선이 아니라 정확한 비례와 형태입니다.

2. '건물'과 '사람 얼굴'의 결정적 차이점
우리가 흔히 배우는 1점, 2점, 3점 투시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빌딩이나 긴 도로, 실내 공간 등 '스케일이 큰 대상'을 그리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내 눈앞에 있는 가로수와 저 멀리 100m 뒤에 있는 가로수는 시각적으로 엄청난 크기 차이를 보입니다. 거리감이 확실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사람의 얼굴은 어떨까요? 사람의 머리 크기는 앞뒤 짱구라 하더라도 기껏해야 20cm 내외입니다. 우리가 인물화를 그릴 때 모델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거리는 보통 1~2미터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 거리에서 바라보는 20cm의 깊이 차이는, 우리 눈(망막)에 맺힐 때 원근감을 거의 일으키지 못합니다.
즉, 콧등에서 귀까지의 거리가 멀어봤자 10cm 남짓인데, 이를 건물이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급격하게 작게 표현하면 우리 뇌는 이를 '입체감'이 아니라 '형태의 찌그러짐'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거대 두상 vs 일반 두상: 원근법 적용의 기준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제가 참고한 자료(첫번째 첨부 이미지)를 보면, 거대한 건물만큼 큰 '거인 두상 석상'이 지평선 위에 놓여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원근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Case A: 거대한 얼굴 (적용 O)
건물 3층 높이의 거대한 얼굴 조각상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턱은 엄청나게 크고 웅장하게 보일 것이고, 이마는 저 멀리 까마득하게 작아 보일 것입니다. 이때는 3점 투시가 강력하게 적용됩니다.
Case B: 일반적인 인물화 (적용 X)
우리가 일상적으로 그리는 초상화, 크로키, 일러스트 속의 인물은 거인이 아닙니다. 두상의 크기는 원근법에 큰 영향을 줄 만큼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투시를 과감하게 제거하거나 무시해야 합니다.

4. 자연스러운 드로잉을 위한 솔루션: 평행하게 적용하기
그렇다면 실제로 어떻게 그려야 가장 자연스러울까요? 정답은 바로 '평행 투영(Parallel Projection)'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위 예시 이미지를 보면, 다양한 각도로 회전된 얼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얼굴을 가로지르는 가이드라인들입니다. 눈썹 라인, 눈의 라인, 코밑 라인, 입술 라인, 턱 라인이 소실점으로 모이지 않고 서로 평행하게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 ① 시선의 안정감: 평행하게 그리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상이 왜곡 없이 편안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 ② 형태의 보존: 얼굴 고유의 비례(눈, 코, 입의 간격)가 깨지지 않아 인물 본연의 인상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 ③ 수정의 용이성: 투시를 억지로 맞추려다 보면 수정할 때마다 얼굴 전체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평행한 기준선은 수정과 보완을 훨씬 쉽게 만들어 줍니다.
실제로 관찰해 보면 얼굴의 양쪽 눈은 원근 투시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원근법을 억지로 적용하여 뒤쪽 눈을 작게 그리는 것보다, 정확한 비례와 형태를 기준으로 양쪽을 대등하게 그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5. 실전! 눈과 이목구비 배치 꿀팁
이론을 알았으니 실전에 적용해 볼 차례입니다. 스케치북을 펴고 얼굴을 그릴 때 다음 3가지만 기억하세요.
TIP 1. 눈의 크기는 '복사 + 붙여넣기' 느낌으로
반측면 얼굴을 그릴 때, 뒤쪽 눈(멀어지는 쪽)의 '가로 길이'를 줄이는 실수를 가장 많이 합니다. 얼굴이 돌아가면서 폭이 좁아 보이는 것은 맞지만, 눈알 자체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초보자라면 차라리 양쪽 눈을 똑같은 크기로 그린 뒤, 뒤쪽 눈의 가로폭만 아주 미세하게(1mm 정도) 줄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높이(세로 길이)는 절대 줄이지 마세요! 높이가 줄어드는 순간 눈은 짝짝이가 됩니다.
TIP 2. 박스(Box) 드로잉 연습 시 주의사항
두상을 단순화하기 위해 육면체 박스를 그리는 연습은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이때 박스의 소실점을 도화지 안에 찍지 마세요. 소실점은 도화지 밖 1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고 상상해야 합니다. 즉, 거의 평행에 가까운 육면체를 그려야 얼굴이 찌그러지지 않습니다.
TIP 3. 사진 모작의 함정 피하기
스마트폰으로 찍은 셀카나 얼짱 각도의 사진들은 이미 렌즈 왜곡이 심하게 들어간 상태입니다. 코는 커 보이고 귀는 안 보이죠. 사진을 보고 그릴 때는 "이 사진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뇌 속에서 왜곡을 펴주는 보정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사진 그대로를 따라 그리면 그림 속 인물은 실제 인물보다 훨씬 못생겨 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마무리하며
인물화의 매력은 '닮음'과 '자연스러움'에 있습니다. 화려한 투시 기술을 뽐내기보다는, 우리 눈이 편안하게 느끼는 평행의 미학을 적용해 보세요.
인물화에서 투시법을 적용하는 것이 얼굴스케치에서 어색하게 느끼게되는 경우이죠!
얼굴 드로잉에서 두상의 크기는 원근법에 큰 영향을 줄 만큼 크지 않다는 점, 양쪽 눈의 크기와 위치에는 원근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정확한 비례와 형태를 기준으로 그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기교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스케치북에 '평행선'을 그어보세요. 그림이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